시골에서 겨울은 대개 농한기지만 엄천골짝 사람들은 오히려 겨울에 바쁘다.모두들 곶감농사 짓느라 겨울내내 나들이 한번 못하더니 곶감을 다 판 지금에서야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시산제 지내러 마을 뒷산 독바위로 우루루 올라간다.모두들 도시락이 든 간단한 배낭을 하나씩 메고 왔는데 나무지팡이 ..
곶감쟁이 십년에 올해처럼 날씨가 안좋았던 적이 없는데 거꾸로 나는 올해처럼 곶감이 잘된 적이 없다. 지난 11월 다들 곶감을 일찍 깎아 곰팡이 피고 녹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늦게 깎았더니 곶감은 오히려 더 맛있게 되었다. 많은 농가가 곶감농사를 망쳤지만 나를 포함한 일부 농가는 더 맛난 곶감을 만들었다. ..
농사지어 밥 먹기 힘들다고 학교에 나가는 아내가 아침 출근 준비로 부산을 떨면서도 어제 사온 새 옷을 입어보고 있네요. 울로 만든 겨울 원피스입니다. 옷이 날개라고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요래조래 맵시를 보고 있는 아내가 멋져 보여 <당신 그 옷 입으니 올리비아 핫세같네~> 라고 했더니 아내는 <..
내가 시골에 와서 그동안 해오던 이런 저런 농사를 접고 곶감쟁이가 한 번 되어보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곶감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벌에 쏘여가며 토종벌을 치는 것보다,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며 다락 논에서 풀을 메는 것보다, 후덥지근한 비가 자주 내리는 가을날 허리가..
지리산 엄천골의 올 겨울은 유난히 춥네요. 예년 같으면 정월에 들어서야 엄천강이 살짝 얼어붙곤 했는데 이번에는 동짓달부터 엄천강이 짱짱 소리를 내며 얼어붙더니 겨울 내내 두터운 빙판을 이루어 얼음장 밑으로 과연 강물이 흐르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그 두터운 빙판은 흰 눈옷을 입었다..
지난번에 농산물 판매비법을 공개한답시고 시시껄렁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비법을 공개하려고 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면 첫해 둘째 해에는 농산물 판매가 참 쉽다. 정말 판매만큼 쉬운 것도 없다 싶은 것이 처음에는 도시 친지들이 모두 다 사주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에 농..
휴천 운서마을 명조 어르신 살아계실 적 <호랑이와 곶감>이라는 전래동화의 실제 주인공이 엄천골 호랑이이며, 엄천골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바구가 그대로 글로 옮겨져 동화로 만들어진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엄천 골짝 운서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던 그 다음해 명조어르신이 ..
“선생님~ 이번에는 정말로 척추가 잘못된 거 같습니더...”“이것 보시오~ 의사는 내고, 진단은 내가 내립니다. 일단 사진부터 찍고 봅시다”덕장에 곶감 거느라 무거운 감 박스를 들고 힘을 쓰다가 어느 순간 허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더니 일주일째 허리를 못 펴고 있다. 무거운 감 박스를 반복적으로 들다가 저질 ..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늦가을 다른 농가에서는 한창 감을 깎아 매달고 있는데 나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습니다. 지난 해 우리 집에서 감을 깎던 아주머니들은 모두 양파 심으러 가버렸습니다.(들에서 양파 심는 품삯이 집에서 곶감 깎는 것보다 한 장 더 많습니다..
<감 수확 철에 쓴 일기>내가 요즘 감나무 밭에 다니는 것은 주인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님이 감 따는 깍짓대를 들고 나서면 콜라랑 나는 자석처럼 따라 붙는다. 말이 필요 없는 완전자동이다. 감나무 밭에 가면 재밌는 일이 많다. 아침 일찍 가면 고라..
‘그래 안되는 건 안되는거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람 불러야지~’하고 포크레인을 도로 차에 실으려다 기왕 돈 들여 빌린 거 연습이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연습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하나씩 이래저래 조작해보니 그런대로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조금 익숙해지니 재미도 있습니..
기계치 선발대회가 있다면 우승도 넘볼 수 있는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포크레인을 운전해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세상에나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ㅎㅎ 이렇게 감격해 하는 것은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계치라는 거. 특히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는 일생에 한번이라도 ..
몇 년 전부터 곶감 숙성용 하우스를 지으려고 벼르던 차에 중고자재를 이용하여 저렴하게 시공해 준다는 업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이런 건 일도 아니라요. 잠깐이면 해버리죠.” “그래도 맨바닥에 짓는 게 아니고 덕장 2층에서 베란다를 내어 맹그는 거라 좀 까다롭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뇨~ 이런 일은 일도 ..
어제 저녁 산책길에 주먹만한 강아지를 보았습니다. 고개 너머 이웃 마을을 지나가는데 낯선 강아지가 한 마리 보이길래 “호오~고놈 눈이 참 이국적이네~” 하고 지나쳤습니다. 아주 어린 것이었어요. 3~4개월이나 되었을라나? 체구도 쪼그마한 것이 재래종 같아 보이는데 완전 토종은 아니고, 스피츠인가 하고 보면..
곶감 깎을 철이 되니 곶감쟁이들이 바빠졌다. 한해 묵혔던 곶감걸이도 닦고 채반도 씻고 덕장 먼지도 털어야 한다. 이제 서리 한 두 차례 내리면 감 수확을 해야 하는데 올해는 누구랑 같이 할 것인지 생각도 해야 한다. 청도 가서는 반시감을, 광양 가서는 대봉감도 몇 차 사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곶감..
지난 가을 추수하느라 한창 바쁠 때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도서관 주간을 맞이하여 독서와 관련된 시상식이 있는데 우리 가족이 다독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시상식을 한다는 날이 마침 가을걷이 하는 날이라 참석할 수도 없거니와 책을 많이 빌려본 것이 무슨 상 받을 일이냐며 정중히 사양하였습..
“춘길이 어르신~~ 밑에 홍시 떨어져요오~~~~” “퍼억...”이웃마을 춘길 어르신과 함께 곶감 만들 감을 수확하는데, 한 사람이 나무위에 올라가서 감을 털어 내리면 한사람은 밑에서 그물망을 치고 주워 담습니다. 지난해에는 이곳 지리산자락 감나무들이 해거리를 하여 수확할 게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가지가 부..
기왕 맞아야 할 매라면 차라리 빨리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으려고 눈을 질끔 감고 있는데 매 타작은 내 앞에선 사람까지만 하고 끝난다. 무릎까지 치켜 올린 바지를 쓸어내리며 ‘다행이야...이번에도 용케 매를 피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언제까지나 매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
첨엔 내가 재수 없이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발이 쥐잡기>라는 속담도 있듯이, 바보농부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진공청소기를 내가 수천 번 수만 번 다 피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 위험한 건 저 바보가 눈을 질끈 감고 휘두른다는 것인데, 만일 눈을 똑바로 뜨고 나와 대적한다면 절..
(지난주에 이어서...) 주인님은 나를 불러들이고는 더 일찍 불러들이지 않은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여~~이제부턴 내가 몰아 줄께여. 저 넘은 완전 독안에 든 쥐라구여~~’ 나는 기꺼이 주인님과 팀이 되었고 즉시 상황을 장악하였습니다. 솔직히 가슴이 우째 그리 쿵쾅대던지... 고백..